최은향의 음악순례: 스페인-파블로 카잘스
탐험과 열정의 조화,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생애
카잘스는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어서, 카페 토스트라는 작은 가게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돈을 벌던 중 작곡가 이삭 알베니즈의 눈에 띄게 되었으며, 이후 스페인 왕비의 비서에게 추천장을 받아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이맘때 그가 발견한 악보가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고 한다.이어서 잠깐 파리에서도 공부를 했지만 1년만에 다시 카탈루냐로 돌아오는 그는 17세의 나이에 마드리드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면서 본격적인 솔리스트로서 활동을 하게 된다. 또한 비슷한 나이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와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같이 카잘스 트리오를 조직, 1937년 해체할 때 까지 다양한 연주활동과 녹음활동을 하게된다. 솔리스트로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을 했다. 1904년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솔리스트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지휘쪽으로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의 이름을 딴 파우 잘스 오케스트라를 조직하면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는 1936년까지 연주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카잘스는 프랑코 정권에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고, 이에 당시 프랑코의 수하 중 한 명은 대놓고 라디오에서 '널 잡기만 하면 다시는 첼로를 연주할 수 없도록 팔꿈치 아래 두 팔을 완전히 잘라버리겠다'며 협박을 했다. 결국 카잘스는 1938년 10월 19일 카탈루냐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외로 도피한다. 1939~42년에 프랑스 남부와 스위스 지역의 한적한 마을에서 가끔씩 연주회를 열었다.백악관에서 연주회를 열었던 게 주목받아, 1963년 12월 6일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에서 심장마비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1973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바흐 첼로 모음곡
카잘스가 이 곡에 대해 한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첫번째는 그가 가지고 있던, 활 쓰는 법이라든가 템포 등이 적혀있지 않은 악보(바흐의 아내인 막달레나의 필사본)에 템포와 운궁법을 지정함으로서 이 곡에 대한 이해와 연주를 좀더 쉽게 만든 것이며, 두번째는 일반적인 형태의 첼로를 위해 작곡되지 않은 5번·6번 모음곡을 연주가 가능하게끔 정리한 것이다.
스페인의 열정과 다채로운 문화가 그의 연주에 녹아들어, 그의 음악은 마치 스페인의 땅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그의 스페니시 풍 첼로 연주는 리듬과 감정의 풍요로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듣는 이를 스페인의 영혼과 정서에 가까이 데려다줍니다.
파블로 가잘스의 음악은 스페인의 문화와 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완벽하게 접목시킨 결실입니다. 그의 연주를 듣는 순간, 스페인의 푸른 바다와 역사적인 건물, 그리고 유럽의 미련한 골목길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마음에 간직될 아름다운 소리의 기억을 선사해줍니다.
그의 연주를 들어 봅시다